‘더 몽키’ 리뷰: 공포도, 유머도 없는 아쉬운 작품

살인을 부르는 원숭이 인형

오즈굿 퍼킨스 감독의 신작 ‘더 몽키(The Monkey)’는 지난해 깜짝 흥행을 기록한 공포 영화 ‘롱레그스(Longlegs)’의 후속작으로, 불길한 기운을 풍기는 장난감 원숭이가 등장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영화는 긴장감도 없고, 재미도 없는 어중간한 작품에 머물렀다.

영화 속 살인마는 작은 열쇠를 돌릴 때마다 북을 치며 사람을 죽이는 원숭이 장난감이다. 외형적으로는 ‘처키(Chucky)’나 ‘미건(M3GAN)’, 혹은 ‘환상특급(The Twilight Zone)’의 토키 티나(Talky Tina)를 연상시키지만, 말하는 대신 살인만 저지를 뿐이다.

관객이 느껴야 할 긴장감은 이 원숭이가 다음에 누구를 죽일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장난감을 조작하는 사람만이 유일하게 안전하며, 나머지 피해자는 무작위로 선정된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설정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단조로운 전개를 반복한다.

잔혹한 장면들, 하지만 의미 없는 연출

영화 속 살인 장면들은 끔찍하지만, 동시에 황당할 정도로 과장되어 있다. 한 여성은 물고기 갈고리가 가득한 통에 빠진 후 얼굴이 불타오르고, 도망치다가 ‘판매 중’ 표지판에 찔려 죽는다. 또 다른 남성은 볼링공에 머리가 박살 나고, 가게 점원은 수축식 화살에 의해 창자가 흘러나온다. 유모차에 불이 붙는 장면도 등장하는데, 의도적으로 유머를 노렸으나 불쾌함만 남는다.

공포 영화에서 유혈이 난무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 몽키’는 반복적인 스토리 전개와 어설픈 유머로 인해 긴장감이 희석되고 만다. 영화는 공포와 코미디의 균형을 맞추려 하지만, 결국 어느 쪽에서도 성공하지 못한다.

무의미한 스토리 전개

영화는 쌍둥이 형제 할과 빌(크리스티안 컨버리 1인 2역)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난감 원숭이를 다락방에서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장난감 상자에는 ‘인생처럼(Like Life)’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 이는 ‘인생처럼, 모든 이가 죽는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생처럼, 이 영화도 지루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영화의 배경은 1970년대풍으로 꾸며졌으며, 퍼킨스 감독은 여기에 블랙 유머를 가미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장면 곳곳에서 ‘로얄 테넨바움(Royal Tenenbaums)’과 ‘아담스 패밀리(Addams Family)’의 분위기를 연상시키려 하지만, 이는 영화의 가치를 높여주기보다는 어설픈 연출을 더욱 부각할 뿐이다.

어느 날, 두 형제가 테판야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던 중 원숭이가 셰프를 조종해 베이비시터의 목을 베어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사건을 통해 원숭이의 힘을 깨달은 할은 복수를 위해 빌을 제거하려 하지만, 오히려 원숭이의 힘이 어머니(타티아나 마슬라니)에게 작용하여 그녀의 눈에서 피가 솟구친다.

이후 두 형제는 고아가 되어 고모와 고모부 집으로 보내지고, 원숭이를 우물에 던져버린다. 그리고 영화는 20년 후로 점프한다.

예상 가능한 전개, 흥미를 잃게 만드는 연출

20년 후, 성인이 된 할(테오 제임스)은 외로운 싱글 아버지가 되어 아들 피트(콜린 오브라이언)와 일 년에 한 번만 만나는 사이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서 다시 의문의 연쇄 살인이 벌어진다. 버려졌던 원숭이가 돌아왔고, 어둠 속에서는 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긴장감은 더욱 떨어진다. 관객은 이미 이야기의 결말을 쉽게 예측할 수 있으며, 감독은 스토리에 대한 흥미를 유지할 만한 요소를 추가하지 않는다.

‘더 몽키’는 공포 영화의 기본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결국 실망스러운 결과물을 내놓았다. 살인 원숭이라는 흥미로운 설정에도 불구하고, 지루한 전개와 어설픈 유머가 영화를 망쳐버린다. 기대를 품고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원숭이보다 먼저 자신이 지루함에 쓰러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