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드라마 속 실존 인물 이름 변경, 왜 필요한가?

한국 영화와 드라마 업계에서는 실존 인물의 이름을 허구적으로 변경하는 관행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영화는 1980년대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며, 등장인물의 이름이 모두 허구적으로 바뀌었다.

영화 속 인물, 왜 이름을 바꿨나?

‘서울의 봄’의 김성수 감독은 언론 시사회에서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삼았지만, 상상력을 더해 각색한 결과 등장인물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 자연스러웠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방부 장관 역을 맡은 김의성 배우도 초기 대본에서는 모든 등장인물이 실명으로 표기되어 있었다고 밝혔다. 이후 주요 인물인 ‘전두환’은 ‘전두광’으로, ‘노태우’는 ‘노태건’으로 변경되었다.

비슷한 사례로, 2020년 개봉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도 등장인물의 이름이 바뀌었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김규평’으로, 경호실장 ‘차지철’은 ‘곽상천’으로,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전두혁’으로 변경되었다. 우민호 감독은 “실명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창작의 자유를 확보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드라마와 사극에서도 동일한 경향

이러한 경향은 사극에서도 나타난다.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권력자 ‘이인임’의 이름을 ‘이인겸’으로 바꿨다. 제작진은 “상상력을 극대화해 창작의 자유를 확보하려는 의도였다”고 설명했다.

반면, 2002년 방영된 드라마 **‘야인시대’**는 실존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으나, 그 이후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법적 문제를 우려해 허구적 이름을 사용하는 추세가 강해졌다.

법적 소송과 창작의 자유 사이의 갈등

영화와 드라마 제작자들이 실명을 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법적 소송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2005년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씨는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상영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법원은 일부 장면 삭제를 조건으로 상영을 허가했지만, 이후 소송은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큰 부담으로 남았다.

MBC 드라마 **‘제5공화국’**도 방송 전부터 신군부 세력이 대본 수정을 요구했다. 이들은 “실명을 사용하는 것은 명예훼손이자 역사 왜곡”이라며 반발했다. 방송 이후에는 수억 원대의 손해배상 소송도 이어졌다.

법적 기준과 제작 가이드라인

법원은 대체로 **“창작의 자유”**를 보호하는 입장이다. 2013년 대법원 판결에서는 “상업적 목적의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다소간의 각색이 허용된다”고 판시했다. 이는 사실 확인의 어려움표현의 자유 보호 측면을 고려한 것이다.

이러한 소송이 잇따르자 영화진흥위원회는 2019년 **‘실화 기반 영화 제작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이 지침은 **“특정 인물이나 사건의 명예훼손을 피하기 위해 등장인물의 특징을 각색해야 하며, 상영 전후에는 모든 설정이 허구임을 명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미국 영화 산업과의 비교

한국과 달리, 미국 영화 산업은 실존 인물의 실명을 직접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 **‘프로스트 대 닉슨’**은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을 다뤘고, **‘밤쉘’**은 폭스뉴스 회장의 성희롱 스캔들을 공개했다. 또 **‘바이스’**는 딕 체니 전 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을 비판적으로 묘사했다.

이처럼 법적 소송과 창작의 자유 사이에서 영화와 드라마 제작자들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끊임없이 조율하고 있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의 이름 변경 관행은 창작과 법적 책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는 필수적 선택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