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회 칸 영화제가 프랑스 남부 칸에서 11일간의 여정을 시작한 가운데, 한국 영화계의 달라진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다가온다. 한국 영화인 최초로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에 위촉된 박찬욱 감독의 말마따나 이제 한국 영화는 세계 영화의 변방에 머물지 않는다. 2004년 ‘올드보이’로 처음 칸의 레드카펫을 밟았던 그는 불과 20여 년 만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며 회회에 젖었다. 올해 칸 경쟁 부문에 초청된 나홍진 감독의 ‘호프’를 비롯해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진출한 연상호 감독의 ‘더 호드’, 감독주간에 입성한 정주리 감독의 ‘도라’ 등 한국 영화들이 쏟아지는 글로벌한 기대감 속에 칸을 찾았다. 박 감독의 ‘헤어질 결심’ 이후 4년 만에 경쟁 부문에 진출한 쾌거다. 그는 작금의 현상에 대해 한국 영화가 중심부를 독점했다기보다는, 세계 영화의 중심 자체가 더 많은 국가와 다양한 예술적 시각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넓어진 것이라는 날카로운 통찰을 내놨다.
심사 기준을 묻는 질문에 박 감독은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열린 마음으로 각각의 작품을 마주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도 영화사적 이해도를 바탕으로 한 전문가로서의 기준점은 잃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예술과 자본의 관계성에 대한 그의 철학적 견해는 꽤나 인상적이다. 글로벌 금융 시장을 둘러싼 긴장감과 거대 자본의 흐름에 대해 언급하며 그는 금융 논리와 예술을 마치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다루는 작금의 시선이 다소 어색하다고 꼬집었다. 작품 내부에 상업적 자본이나 금융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담겨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예술에 적대적이라고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자본의 역학 관계조차 예술적으로 설득력 있게 묘사된다면 충분히 귀 기울일 가치가 있다고 그는 역설했다. 2017년 제70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약했던 그는 다시 한번 심사위원장 자리를 수락하기까지 적잖은 중압감을 느꼈음을 털어놓으면서도, 그간 칸에서 받은 수많은 혜택에 이제는 보답할 때가 되었다는 특유의 담담한 소회를 남겼다.
이처럼 글로벌 무대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은 한국 콘텐츠의 묵직한 자신감은 비단 스크린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내 안방극장에서도 체질 개선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단연 ‘시즌제’의 정착이다. 영화계에는 예로부터 ‘형만 한 아우 없다’는 속설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작품이 흥행해 야심 차게 속편을 내놓아도 성적이 신통치 않을 때 흔히 쓰는 말이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 생태계는 이 징크스를 비웃기라도 하듯 시즌2를 공격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다양한 플랫폼이 시장의 파이를 키우면서 드라마 시즌제가 일종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고, 비슷한 시기에 굵직한 후속작들이 연이어 출격하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실종자들을 기억하자는 따뜻한 기획 의도로 호평받았던 tvN 드라마 <미씽: 그들이 있었다>가 다시 한번 사라진 이들의 흔적을 쫓는다. 과거 시즌1의 바통을 이어받아 오는 19일부터 매주 월화 밤 8시 50분 안방극장을 찾는다. 영혼을 보는 넉살 좋은 사기꾼 김욱(고수)과 딸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품은 장판석(허준호), 두 콤비가 망자의 한을 달래는 뼈대는 그대로다. 이번 시즌에서는 장판석 딸의 흔적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언뜻 보면 전형적인 범죄 수사물 같지만, 이 드라마의 진짜 매력은 두 주인공이 어떻게 실종자를 찾아내고 그들의 맺힌 한을 풀어주는지에 방점이 찍혀 있다. 아직 이 세계관이 낯선 시청자라면 앞선 시즌부터 정주행을 시작해 자연스럽게 시즌2로 넘어오기에 딱 좋은 타이밍이다.
여기에 <환혼>의 두 번째 이야기인 <환혼: 빛과 그림자> 역시 오는 10일부터 주말 밤 9시 10분 시청자들을 찾을 채비를 마쳤다. 엄밀히 따지면 새로운 시즌이라기보단 전체 30부작의 큰 그림을 파트1과 파트2로 나눈 형태에 가깝다. 이번 파트에서는 무덕의 몸에 환혼되었던 낙수가 본래의 몸을 되찾는 서사가 전개되며, 고윤정이 여자 주인공으로 전면에 나서 극의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는다.
OTT 특유의 자유분방함을 십분 살리며 청춘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던 티빙 오리지널 <술꾼도시여자들>도 돌아온다. 오는 9일 오후 4시 1, 2화 공개를 앞둔 이 작품은 세 친구의 현실적인 연애와 우정관을 찰진 욕설과 함께 버무려내며 수많은 이들의 ‘찐 공감’을 유발했던 히트작이다. 정은지와 이선빈의 호연은 물론, 한선화가 연기력을 재평가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최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이선빈은 “이번 시즌에서는 우리의 우정이 한층 깊어지고 다채로워졌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작가는 동일하지만 연출진이 교체된 변수가 극에 어떤 시너지를 가져올지가 관건이다.
마음의 병을 어루만지며 ‘힐링 사극’으로 자리매김했던 tvN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 시즌2 역시 올해 하반기 첫 방송을 확정 지으며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예열하고 있다. 지난 시즌, 상처받은 이들에게 위로의 처방전을 내리며 덩달아 힐링을 선사했던 유세풍이 이번엔 또 어떤 치유의 서사를 보여줄지가 최대 관전 포인트다. 특히 서은우에게 채 전하지 못했던 유세풍의 애틋한 마음이 어떻게 맺어질지 묻는 팬들의 목소리도 높다. “제 마음 여기에 두겠습니다. 엄청 보고 싶습니다”라는 예고편 속 묵직한 내레이션 한 줄만으로도 이미 이 드라마를 기다리는 팬들의 마음은 요동치고 있다. 칸을 호령하는 작가주의 영화부터 안방극장을 웃고 울리는 웰메이드 시즌제 드라마까지, 영토를 무한히 확장해 나가는 한국 콘텐츠의 현주소는 흥미로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