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 인물의 이면을 파헤치다: 고요한 반상의 혈투부터 소셜 미디어 제국의 폭로전까지

영화계가 실존 인물들의 치열한 내면과 갈등을 조명하는 묵직한 신작들로 들썩이고 있다. 겉보기엔 전혀 다른 두 세계의 이야기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뒤흔든 인물들의 숨겨진 이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점에서 묘한 궤를 같이한다.

타오르는 승부욕 이면의 감정 먼저 눈길을 끄는 작품은 우여곡절 끝에 오는 26일 개봉을 앞둔 영화 ‘승부’다. 세계 바둑사에 전무후무할 스승 조훈현과 제자 이창호의 치열한 대국을 다룬 이 영화는 묵직하면서도 아름다운 어른의 성장담을 그려낸다. 바둑 팬들에게는 이미 유명한 일화지만, 바둑 규칙조차 모르는 관객들마저 ‘이게 정말 실화라고?’라며 혀를 내두를 만큼 기가 막힌 서사가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바둑이라는 소재 특성상 무대는 단조롭고 배우들의 표정은 고요하지만, 실화가 가진 팽팽한 힘과 주연 배우들의 연기 신공 덕에 두 시간의 러닝타임은 순식간에 증발한다. 개봉 전부터 반응도 뜨거워 이번 주 초에는 영화 ‘미키 17’의 독주를 꺾고 예매율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작품의 메가폰을 잡은 김형주 감독은 2021년 2월에 열렸던 청룡영화상 다음 날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당시 배우 유아인은 이병헌 등 쟁쟁한 선배들을 누르고 ‘소리도 없이’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하필 다음 날 촬영 일정은 극 중 바둑 황제 조훈현(이병헌 분)이 자식처럼 거둔 제자 이창호(유아인 분)에게 뼈아픈 패배를 당하는 하이라이트 장면이었다. 전날 시상식 결과와 묘하게 겹치는 상황 탓에 현장에는 서걱서걱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때 촬영장에 도착한 이병헌이 웃으며 침묵을 깼다. “그러니까 어제 아인이가 상 타고 내가 떨어졌을 때, 딱 그 심정이죠?” 그의 넉살 좋은 농담 한마디에 촬영장에는 일순간 따뜻한 온기가 돌았고, 김 감독은 그를 보며 진정한 어른의 여유를 느꼈다고 회고했다.

깊이 있는 통찰과 압도적 앙상블 영화는 쓰디쓴 패배를 맛본 스승과, 절치부심 끝에 제자에게 다시 도전장을 내미는 두 번의 대국에 집중한다. 단순히 피나는 노력으로 왕좌를 탈환하는 쾌감을 그리는 ‘록키’식 서사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병헌은 과장된 액션 없이 표정조차 절제해야 했던 이 정적인 시나리오에 흠뻑 빠진 이유를 털어놓았다. 한 집에서 밥을 먹이고 야단치며 아들처럼 키운 제자에게 결승전에서 단 1%도 예상 못 했던 패배를 당한 뒤, 두 사람은 터벅터벅 걸어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2층 방에서 제자가 복기하며 내는 바둑알 소리를 들으며 1층 거실에서 묵묵히 담배만 피워대는 남편. 그리고 다음 날 두 사람을 차에 태워 경기장으로 향해야 하는 아내(문정희 분)가 견디는 숨 막히게 어색한 공기. 이병헌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이토록 묘하고 특별한 정서야말로 모든 배우가 탐낼 만한 연기 포인트라고 덧붙였다.

승리를 직감하면 다리를 떨거나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조훈현 특유의 습관을 가져오면서도 묵묵하게 고통과 환희를 표현해 낸 이병헌의 연기는 역시나 명불허전이다. 여기에 이전에 주로 맡아온 선 굵은 캐릭터들과 달리, 이창호의 별명인 ‘돌부처’로 분해 미세한 마음의 파동을 정교하게 그려낸 유아인의 열연이 더해져 극의 균형추는 완벽한 황금비율을 이룬다.

소셜 네트워크의 이면, 새로운 폭로 조용한 반상 위에서 한 개인의 치열한 심리전이 펼쳐진다면, 바다 건너 할리우드에서는 전 세계를 쥐고 흔든 거대 IT 기업의 치부를 파헤치는 맹렬한 폭로전이 베일을 벗었다. 2010년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창업기를 다룬 비즈니스 드라마 ‘소셜 네트워크’를 내놓았을 때만 해도, 이 이야기에 속편이 필요할 것이라 짐작한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난 15년 동안 인스타그램 인수, 10대들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앱의 유해성 논란, 그리고 전 세계 선거의 판도를 뒤흔든 가짜 뉴스에 대한 안일한 대처까지 페이스북(현 메타)이 낳은 파장은 실로 엄청났다. 기업 역사상 가장 중대한 사건들은 첫 영화가 개봉한 한참 뒤에 벌어진 셈이다.

이러한 메타를 둘러싼 숱한 논란을 다루는 후속작에 대한 소문은 수년간 무성했고, 마침내 ‘소셜 레코닝(The Social Reckoning)’이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되었다. 전작으로 아카데미 각색상을 거머쥔 애런 소킨이 대본 집필은 물론 데이비드 핀처의 바통을 이어받아 감독직까지 맡았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캐스팅이다. 제시 아이젠버그는 저커버그 역으로 돌아오지 않으며, 그 빈자리를 제레미 스트롱이 채워 자신만의 새로운 아이콘을 완성했다.

전작의 DNA를 물려받은 또 다른 이야기 시점 상 완벽한 형태의 속편은 아닐지라도 이 영화는 명백히 전작의 핵심 DNA를 고스란히 공유하고 있다. 극은 2021년 프랜시스 하우건의 이른바 ‘페이스북 파일’ 내부 문건 유출 사건을 정조준한다. 내부 고발자인 하우건 역은 영화 ‘아노라’로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은 마이키 매디슨이 맡아 수상 이후 뜻깊은 첫 행보를 선보인다. 주요 출연진이 대거 교체되었음에도 전작의 연장선상으로 홍보되는 이 독특한 상황은 영화 팬들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해 왔다. 소니 픽처스는 지난 월요일에 열린 시네마콘 연례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쏟아지는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내놓았다.

현장에서 공개된 티저 예고편 속 제레미 스트롱은 초점 없는 서늘한 눈빛과 현재 저커버그의 특유의 말하기 방식까지 섬세하게 구현해 내며 단숨에 시선을 압도했다. 예고편에서 그는 기숙사 방에서 창업을 꿈꾸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고, 자신이 대화가 끝났다고 선언하면 그것으로 상황은 완전히 종료된 것이라 못 박는다. 무대에 오른 애런 소킨은 소셜 네트워크라는 작은 꿈이 거대한 글로벌 기업으로 폭발한 이후, 페이스북의 영향력이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완전히 재편해 버렸다고 역설했다.

승패의 명암 속에서 흔들리는 사제지간의 내면을 밀도 있게 그려낸 ‘승부’나, 거대한 소셜 미디어 제국의 부끄러운 민낯을 가차 없이 폭로하는 ‘소셜 레코닝’은 결국 인간의 치열한 욕망과 그 파장을 스크린에 투영한다. 극장으로 향하는 관객들은 각기 다른 결을 지닌 이 두 편의 서사를 통해 실화가 선사하는 강렬하고도 묵직한 여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